모두가 그렇다고 동의하는 생각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닐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대세를 가볍게 여겨 틀린 것이라 마냥 우길 수 있는 것 또한 아닙니다.
옳고 그름의 기준은 ‘진리’와 그 사람이 지닌 ‘가치’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치관이 정리되지 못할 경우, 그릇된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생각’과 ‘가치관’은 다릅니다.
생각을 많이 한다고 그것이 옳음을 반증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가치관에 따라 생각을 가늠하는 훈련이 안되어 있기에 옳은 판단이 어려운 것입니다.
자기의 경험과 그 당시의 정황과 감정에 따라 판단을 하게 되어 실수가 많아지는 것입니다.
세월이 많이 흘러 오래 살았다고 복잡한 생각들이 유연해지고 성숙되게 정리되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생각훈련!
생각연습을 하는 것입니다 .
더 나아가 가치관 훈련!
진리에 근거한 옳은 가치관으로 모든 상황과 정황을 결정하는 훈련입니다.
가치관 훈련은 때로는 엄격하게,
융통성있게 생각하지만 결코 양보할 수 없기도 합니다.
왜냐면 나를 정의하는 자신의 가치관이기 때문입니다.
가치관은 생각의 기준이며
선택의 기준이며
모든 판단의 근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중요한것이 있습니다.
그가 세운 가치관이 과연 신뢰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가치관은 학설이 될 수 없고, 축척된 경험일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것을 흡수한 견해와 논리가 되어서도 안됩니다.
가치관의 출처는 오직 하나입니다.
진리입니다.
진리와 존재적 본질이 가치관의 근본입니다.
경험으로, 학설로, 지식으로 쌓아놓은 가치관은 겉으로 보기엔 괜찮아보이지만
결국 무너지고 다툼이 일어나게 됩니다.
대부분의 다툼은 진리의 토대로 이루어진 가치관의 충돌이 아니라 각자의 철학이기 때문입니다
가치관의 혼돈과 혼란은 진리를 도외시한 결과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가치관의 출처는 오직 하나, 진리입니다. 그 진리는 주님이시며, 주님은 말씀이십니다.
자신이 세운 모든 기준의 출처를 묵상하며 하루하루 그 가치관으로
삶의 모든 선택을 하고 대화하며 주장하고 결정하는 자기훈련이 이루어지면 합니다.
오늘의 시대창문입니다.
- 글쓴이 : 목회컨설팅연구소 김성진 소장 -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14: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