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의 또 다른 이름이 ‘극복’이며, ‘발전’임을 깨닫는 아침입니다.
배신, ‘믿음이나 의를 저버리는’ 경우 그 배신감을 들어 상대를 매우 단호하게 처리하여 왔습니다.
배신자로 단정 후 용납하지 않을 만큼 여유로움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러한 이면에 정녕 나 자신은 배신에 의한 상처를 무한으로 만들고
의기소침하며 자괴감까지 만들어 자책을 하기 일쑤였습니다.
‘다시는 믿지 않고 마음을 주지 않기로 다짐을 하기도 하고, 사람을 의지하지 않는다.
다시는 기대하지 않는다 . 결코 사랑도 하지 않겠다.’
이런 다짐으로 나를 괴롭게 했습니다.
지금도 그런 상처의 흔적들이 여러군데 남아 있지요.
그런데말입니다.
그 상처로 얼룩지게 된 배신이 말입니다.
나에게 새로운 출발이 되고, 성숙의 계기가 되고 다시 새롭게 도약하는 계기가 됨을 알게 되었습니다.
도리어 사건을 통해 내 삶을 수정할 수 있는 기회가 되고,
내 문제를 주목하게 되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 배신의 사건은 오히려 저에게 발전의 모멘텀이 된다는 것입니다.
실패와 성공는 같이 가는 것입니다.
실패가 있다는 것은 성공이 있다는 것을 담보로 하는 것과 같이
배신은 저의 도약의 기회이며 변화의 전환점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늘 배반을 당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단지 배반에 자의식을 갖고 자책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배신한 자를 원망하지 않고 도리어 그럴 수 밖에 없는 상대의 입장을 생각해보고
도리어 그를 축복하는 그런 성숙함을 드러내고 싶습니다.
배신의 경험은 이제 제 삶에 있어서 변화의 전환점입니다.
이제 나를 보호하기 위해 자아의 방호벽과 경계망을 치지 않습니다.
행여 다시 배신을 경험해도 ‘도리어 변화의 전환점됨’을 인식하고 받아드리는
또 한걸음 걸어가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오늘의 시대창문입니다.
- 글쓴이 : 목회컨설팅연구소 김성진 소장 -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 5:4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