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인간관계에 자주 직면하게 되는 상황은 ‘오해’, ‘이해’, ‘화해’입니다.
이 세 단어의 공통분모는 ‘풀다’의 ‘해(解)’이지요.
풀어내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각기 소견이 다르고 사물과 상황을 바라보는 각도가
360도의 일각만큼 다 다르기 때문에 오해가 생길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소통이 중요합니다.
그 소통에 중요한 하나가 바로 ‘이해’이기도 합니다.
이해를 통하면 ‘화해’가 이루어집니다.
오해와 이해의 거리가 멀수록 화해도 어려워집니다.
오해를 이해로 바꾸지 않으면 화해가 불가능합니다.
이해하는 방법은 너무도 간단합니다.
사랑입니다.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5대 요소 중 하나가 이해이기에
사랑은 상대의 입장으로 생각해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해를 이해로 받아드리는 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이해되는 것만 사랑하는 것은 이기적인 사랑입니다.
오해는 극복하고
이해로 상대의 입장이 되고
화해는 속도가 빨라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상대의 허물을 덮어 가는 가장 강력한 힘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그 사랑이 화해를 이끕니다.
관점의 다름이 차이를 만들고 그 차이가 오해를 빚어냅니다.
그 간격을 좁힐수 있는 힘이 사랑입니다.
내 입장이 아닌 상대의 입장에서 나와 다르게 바라보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사랑은 훈련이라고 합니다.
이해하는 훈련입니다.
이해해주는 훈련입니다.
이해하려고 하는 훈련입니다
그렇게 이해될 때 화해가 되고
비로소 ‘사랑’이라고 합니다.
사랑은 경청하게 합니다.
판단하지 않고 경청할 때 이해의 문이 열리게 됩니다.
그리고 화해의 열매는 바로 ‘하나 됨’이지요
하나 됨은 상합, 즉 뼈와 뼈를 맞추는 신비입니다.
오늘도 그 신비를 맛보기 위해, 경청의 기술을 터득하는 하루를 엽니다.
오늘 아침의 시대창문입니다.
- 글쓴이 : 목회컨설팅연구소김성진소장 -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찌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베드로전서4:8 |